무역센터 현대백화점 초대전 'Orb, 원' 11월 30일까지
건칠과 나전 결합한 달항아리 등 '월영' 새 조형미 창조

[ABC뉴스=강현 기자] 수곡(守谷) 손대현 장인(76)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나전칠기 명장 제1호이자 서울시 무형유산 칠장 제1호로 국보급 작가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60년 회고전을 열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인으로서 그의 면모와 위상은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지금도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어내며 전시회도 열고 있다. "눈이 보일 때까지는 작업을 하겠다"는 장인다운 각오의 실천이자 영원히 현역 작가로 작업 현장을 지키겠다는 열정의 발로임은 분명하다.
손대현 명장은 지금 서울 무역센터 현대백화점 9층 면세점 전시장에서 'Orb, 원(圓)' 타이틀의 작품 초대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여점 우리 고유의 달항아리를 중심으로 캔버스 부조 작품 등의 신작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 제목인 원은 작가가 평생에 걸쳐 축적해온 시간과 정신, 정제된 마감을 응축하는 본질적 조형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작품은 끝없는 옻칠의 층위, 곡선의 균형, 신묘한 여백을 통해 한국의 전통미를 아낌없이 드러낸다. 그런 만큼 이번 전시회는 세계적 명품 브랜드로 가득찬 면세점 공간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전시장 초입에 펼쳐놓은 작은 연못 같은 작품은 나전칠기 장인 작품전에서는 물론 어떤 동서양화 거장의 전시회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공간과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압권이다. 그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대목인 것이다.




가로 1.9미터 세로 2.1미터 높이 5센티미터 크기의 홍송과 자작나무 합판으로 에워싸인 직사각형 연못과 그 안의 달항아리와 수석, 자갈 등으로 이뤄진 대형 작품은 제목이 월영 즉 달그림자이다.
우선 달항아리 작품 제목은 '모자이크 건칠 달항아리'. 거푸집으로 만든 항아리 조형물 위에 전통적 옻칠과 삼베 감싸기가 여러겹 이어지는 이른바 건칠을 한 뒤 눈부신 문양의 나전 조각을 하나씩 붙여나가는 지난한 작업 끝에 완성된 아름답고 찬란한 달항아리다. 손 장인의 손 끝에서만 만날 수 있는 빼어남과 아우라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놀랍게도 짙푸른 바닥에 수석과 자갈이 깔린 연못의 물 위로는 은은한 금색의 달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후면 벽채에 걸린 금빛 찬란한 역시 건칠로 제작된 금박 달항아리 조형물이 연못에 그대로 비치며 이같은 그림자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보는 각도와 위치에 따라서 금빛 은은한 달그림자는 그 크기와 모양, 금빛 농도를 달리하고 있다. 여기에 모양과 크기가 다른 수석들도 모두 다채로운 빛깔의 나전으로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어 달그림자와 절묘하게 어울리며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그동안 자개장이나 자개함 같은 실용적인 공예품을 주로 나전칠기 작품으로 보아오던 관행으로 볼 때 이번 손대현 장인의 복합적이며 퍼포먼스 작품 같은 이 월영은 나전칠기를 접목한 작품으로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사례로 평가받고도 남을 만하다. 이같은 기획력과 아이디어도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것이라 하겠다.

나전칠기와 건칠의 장인으로 실용과 장식 나전 공예품은 만들어보지 않은 작품이 없다시피한 그가 우리나라 전통 달항아리에 관심을 가지고 본격 제작에 들어가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몇 년전 달항아리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희한하게도 달항아리가 복잡한 머리를 가라앉히고 혼란한 마음도 평온하게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달항아리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나전칠기를 적용한 달항아리를 만들고 캔버스에 옻칠과 나전으로 부조 등을 올리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초고열의 가마서 구워내는 전통적인 도자기 달항아리가 아니라 거푸집에 옻칠과 건칠, 나전이 사용되는 전통적인 나전칠기 방식의 달항아리인 것이다.

손대현 명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난각 달항아리 즉 나전 대신 계란껍질을 마감으로 처리한 항아리를 앞서서 제작해 주목을 끌고 있다.
난각 달항아리는 건칠로 조형된 달항아리 표면에 흰색 계란 껍질을 붙여 무늬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즉 옻칠과 건칠 위에 계란 껍질 조각을 하나씩 붙여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와 실금 효과를 내는 기법인데 계란 껍질의 독특한 질감이 전통적인 달항아리에 현대적인 미감을 더하고 있다 하겠다.
이번 전시회 소개 카드에는 이 난각 건칠 달항아리 사진이 올려져 원에 대한 이미지와 함께독창적인 작품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있다.
![['수월(水月)', 오동나무, 자작나무 합판, 옻칠, 삼베, 나전, 131x143.5x3.5cm, 2025]](https://cdn.abcn.kr/news/photo/202509/82188_36683_528.jpg)

손대현 명장의 달항아리는 옻칠과 건칠을 이용해 합판 위에 자개 부조로 올려지기도 하고 표면을 적, 청, 황, 백 등 다양한 색깔의 분채로 마감한 중, 대형 항아리로 제작돼 전시회장을 채우고 있다.
그는 달항아리를 전통 건칠 기법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항아리로 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나전칠기 전통 명장이 현대적 감각의 작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를 나전칠기 작품에 새 지평을 열고 끝없이 진화를 주도하는 이 시대의 혁신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거장으로서 보기 드물게 부드러우면서도 겸손한 손 장인이지만 앞으로의 포부는 결연하다. 나전칠기 국가 1호 명장으로서 결기가 느껴진다.
"작품과 작업을 하다 보면 옛날 선대 장인이나 선인이 나전칠기를 제작하던 손길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만큼 눈물과 땀이 서린 우리 나전칠기가 세계 최고의 미술품으로 인정받게 되기를 저는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 힘닿는데까지 진력할 생각입니다."
오는 12월 세종대학교 미술관의 대형 전시실에서 손대현 명장의 작품 초대전이 열린다. 언제나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는 그의 패기에 전시를 거듭할수록 애호가들의 기대는 배가될 수밖에 없다.
(작품 사진=강현 기자)
